용문사 은행나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고 키가 큰 은행나무로, 경기도 양평 용문산 자락에 자리한 천년 고찰 용문사 마당에 서 있습니다. 약 1,100살로 추정되는 이 나무는 가을이면 온통 노랗게 물들어 해마다 수많은 사람이 찾는 단풍 명소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나무가 특별한 이유는 크기와 나이만이 아닙니다. 신라의 마지막 태자가 심었다는 이야기, 고승의 지팡이가 자라났다는 이야기, 톱을 대자 피가 흘렀다는 이야기까지 천 년 넘게 쌓인 전설이 나무만큼이나 무성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용문사 은행나무에 얽힌 전설을 하나씩 풀어 보고, 전설과 실제 역사 사이의 흥미로운 차이, 그리고 올가을 노란 은행나무를 보러 갈 때 알아두면 좋은 방문 정보까지 정리했습니다.
용문사 은행나무를 한눈에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 구분 | 내용 |
|---|---|
| 정식 명칭 |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 |
| 국가유산 지정 | 천연기념물 1962년 지정 |
| 추정 나이 | 약 1,100살 |
| 높이 | 약 42m |
| 가슴높이 둘레 | 약 11m |
| 단풍 절정 시기 | 10월 말에서 11월 초 |
| 입장료 | 무료 |
| 주소 |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용문산로 782 |

목차
용문사 은행나무는 어떤 나무일까
국가유산청에 따르면 용문사 은행나무는 우리나라 은행나무 가운데 나이와 높이 모두에서 가장 높은 기록을 가진 나무입니다. 1962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됐고, 2008년 지금의 이름인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로 바뀌었습니다. 은행나무는 심은 뒤 열매를 맺기까지 25년에서 30년이 걸려, 할아버지가 심으면 손자 대에 열매를 본다고 해서 공손수라고도 불립니다. 그런 나무가 천 년을 넘게 살아남았으니 이야기가 쌓이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겁니다.
실제로 나무 앞에 서면 사진으로만 보던 그 모습이 한눈에 다 담기지 않을 만큼 웅장합니다. 높이 40m를 넘고 둘레도 10m를 훌쩍 넘기는 거대한 줄기 아래에 서면 고개를 끝까지 젖혀도 나무 끝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가을에 잎이 한창일 때는 나무 아래 마당이 바닥까지 온통 노란색이 되고, 햇빛이 들면 그 빛이 얼굴에까지 올라옵니다. 어른들은 사진을 찍느라 바쁘고, 아이들은 바닥에서 제일 크고 샛노란 잎을 고르느라 한참을 쪼그리고 앉아 있습니다.
천년을 담은 전설들
마의태자가 심었다는 이야기
가장 널리 알려진 전설은 신라의 마지막 태자 마의태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신라의 마지막 임금 경순왕은 나라의 힘이 기울자 고려 왕건에게 나라를 넘기기로 합니다. 태자는 이를 끝내 받아들이지 못하고 통곡하며 아버지에게 마지막 인사를 올린 뒤 금강산으로 들어가는 길을 택합니다. 그 길에 들른 곳이 바로 양평 용문사였습니다. 태자는 나라 잃은 설움을 안고 절 마당에 은행나무 한 그루를 심고 떠났다고 전해집니다. 이후 금강산에 들어간 태자는 비단옷 대신 삼베옷을 입고 풀뿌리와 나무껍질로 연명하며 생을 마쳤고,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삼베옷 입은 태자, 마의태자라고 불렀습니다. 나라를 바친 아버지는 고려에서 대접을 받으며 살았지만, 아들은 끝까지 고난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 아들이 남긴 나무가 천 년을 넘게 꺾이지 않고 서 있다는 이야기는 사람들이 이 나무를 단순한 고목 이상으로 여기게 만든 이유입니다.
의상대사의 지팡이가 나무가 됐다
또 하나의 전설은 신라의 고승 의상대사와 관련이 있습니다. 의상대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이곳 땅에 꽂아 두었는데, 거기서 뿌리가 내려 지금의 은행나무로 자랐다는 이야기입니다. 두 전설이 합쳐진 버전도 있습니다. 의상대사가 꽂아 둔 지팡이가 오랫동안 그대로 있다가, 마의태자가 금강산으로 가는 길에 이곳을 지나는 순간 갑자기 은행나무로 변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참고로 지팡이를 꽂았더니 나무가 자랐다는 삽목 전설은 용문사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여주 신륵사, 청도 적천사의 은행나무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해인사의 전나무에는 최치원의 지팡이가 자랐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오래된 절의 거목에는 이런 이야기가 자주 따라붙곤 합니다.
톱을 대자 피가 흘렀다는 천왕목 이야기
용문사 은행나무에는 신비로운 이야기가 더 있습니다. 누군가 나무를 베려고 톱을 대자 그 자리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천둥이 쳤다는 이야기, 나라에 재앙이나 큰일이 닥칠 때마다 나무가 큰 소리를 내어 알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그리고 1907년 정미의병 항쟁 때 일본군이 용문사에 불을 질렀는데, 절은 불탔지만 이 나무만은 타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실제 역사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1907년 일제가 고종을 강제로 물러나게 하고 대한제국 군대를 해산시키자 전국에서 의병이 일어났고, 용문사는 양평 의병의 근거지가 됐습니다. 그해 8월 24일 용문사에서는 양평 의병과 일본군 사이에 격전이 벌어졌고, 이때 절은 일본군에 의해 불에 탔습니다. 지금 용문사 건물들이 대부분 1909년 이후에 다시 지어진 이유입니다. 수많은 전쟁과 불길 속에서도 살아남았다고 해서 이 나무는 천왕목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렸습니다.
벼슬까지 받은 나무
용문사 은행나무에는 사람처럼 벼슬을 받은 기록도 있습니다. 조선 세종 때 이 나무는 정3품 이상의 벼슬인 당상관 품계를 받았습니다. 나무에 벼슬을 내린다는 게 지금 보면 신기하지만, 그만큼 조상들이 이 나무를 귀하게 여기고 보살폈다는 뜻입니다. 천 년 넘게 나무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데에는 전설 속 신비로운 힘만큼이나 오랜 세월 나무를 아끼고 지켜 온 사람들의 손길이 있었던 셈입니다.
전설과 사실 사이, 진짜 나이는
전설을 하나씩 따져 보면 재미있는 점이 보입니다. 의상대사는 7세기에 활동한 스님이고, 마의태자가 금강산으로 떠난 건 신라가 고려에 항복한 10세기 무렵입니다. 두 인물 사이에는 200년 넘는 시간 차이가 있습니다. 두 전설이 동시에 사실일 수는 없다는 뜻입니다. 학계에서는 용문사가 신라 때 세워진 뒤, 중국을 오가던 스님이 은행나무를 가져와 심었다고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나무의 나이도 자료마다 1,100살에서 1,300살까지 조금씩 다르게 추정됩니다. 결국 누가 심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게 중요하지는 않을지도 모릅니다. 천 년 동안 사람들이 이 나무에 나라의 운명과 슬픔, 바람을 이야기로 덧입혀 왔다는 사실 자체가 용문사 은행나무를 특별하게 만드는 진짜 이유니까요.
가을 단풍 방문 정보와 즐기는 방법
노랗게 물드는 시기와 주차
용문사 은행나무가 가장 노랗게 물드는 시기는 평년 기준 10월 말에서 11월 초 사이입니다. 날씨에 따라 변동이 있으니 방문 직전에 단풍 상황을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용문산관광단지 주차장은 약 700대를 세울 만큼 넓습니다. 그런데도 단풍철 주말에는 진입로부터 차가 줄지어 서고, 늦게 들어갈수록 그 줄이 주차장 입구를 지나서도 이어집니다. 평일이 가장 수월하고, 주말이라면 아침에 일찍 들어가 점심 전에 은행나무를 보고 내려오는 순서가 훨씬 덜 지칩니다. 입장료는 무료이고 주차요금은 승용차 기준 3,000원 안팎이며 출차 시 무인정산기로 결제하면 됩니다.
은행나무는 용문산관광단지 주차장에 차를 대고 숲길을 따라 용문사까지 걸어 올라가면 만날 수 있습니다. 예전 매표소 자리를 지나면 뒤로는 차가 들어가지 못하고, 여기서부터는 모두 걸어야 합니다. 어른 걸음으로 약 20분이지만 아이가 낙엽을 줍고 돌멩이를 들여다보기 시작하면 30분은 금세 지나갑니다. 가는 길 자체가 단풍 숲길이라 산책하듯 걷기 좋고, 험한 산행 없이도 가을을 즐길 수 있어 가족이나 부모님과 함께 가기에도 부담이 적습니다.
아이와 함께 방문할 때 챙길 내용
아이와 함께라면 두 가지만 기억하면 됩니다. 주말에는 오전에 들어갈 것, 그리고 경내 돌계단 앞에서 유모차를 접을 준비를 할 것입니다. 단지 안 노란색 종합센터 건물에 수유실과 기저귀교환대, 화장실이 있어서 출발 전에 아이 상태를 한 번 정리하고 걷기 시작하기 좋습니다. 일주문을 통과하면 길 양옆으로 키 큰 나무들이 늘어서고 발밑에는 은행잎과 단풍잎이 섞여 깔립니다. 길이 정비돼 있어 유모차를 미는 동안은 크게 힘들지 않지만, 사천왕문 쪽으로 올라서는 돌계단에서는 유모차를 접고 기저귀 가방 하나로 짐을 줄여 오르면 경내에서는 두 손이 자유로워 아이 사진 찍기가 훨씬 수월합니다.
나무 아래에는 은행 열매가 떨어져 있는 날이 많고 밟으면 냄새가 신발에 오래 남으니, 아이에게 동글동글한 건 밟지 말자고 미리 일러두면 좋습니다. 주운 잎을 담아 올 작은 지퍼백 하나를 챙겨 가면 아이 주머니가 은행잎으로 터질 일이 없습니다. 아이에게는 옛날에 누가 이 나무를 톱으로 자르려 했더니 피가 나고 하늘에서 천둥이 쳤다는 이야기 하나면 충분합니다. 그 말을 들은 아이가 나무 둥치를 한참 올려다보는 모습이 꽤 진지합니다.
주변에 함께 둘러볼 곳
내려와서 바로 차에 타지 말고, 주차장에서 걸어서 10분쯤 되는 양평친환경농업박물관에 들르면 반나절이 꽉 찹니다. 관람료는 무료이고 3월에서 10월은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6시까지, 11월에서 2월은 오후 5시까지 운영하며 월요일은 휴관입니다. 11월이라면 박물관이 오후 5시에 닫고 입장은 그보다 30분 먼저 마감되니, 은행나무에서 내려오는 시간을 거기에 맞춰 잡으면 좋습니다. 박물관을 나와 종합센터 쪽으로 돌아오면 넓은 잔디광장과 분수, 조각공원이 이어지고, 그 둘레로 단풍이 든 산책로가 한 바퀴 돕니다. 아이는 여기서 마음껏 뛰어다니고, 놀이시설 몇 종과 야외공연장도 있어서 돗자리 하나만 챙겨 와도 오후 한두 시간은 금방 지나갑니다. 식당가에는 산채비빔밥 같은 산채 음식을 내는 집들이 모여 있어서 늦은 점심을 여기서 해결해도 됩니다.
천년의 나무 앞에서
전설을 알고 나무 앞에 서면, 천 년을 버틴 그 거대한 줄기가 조금 다르게 보일 겁니다. 신라의 마지막 태자가 나라 잃은 슬픔을 안고 심었다는 이야기, 의상대사의 지팡이에서 자랐다는 이야기, 톱을 대자 피가 흘렀다는 천왕목 이야기, 조선 세종 때 벼슬을 받았다는 기록까지. 이 모든 이야기가 한 그루의 나무에 겹겹이 쌓여 있습니다. 그리고 1907년 절이 불탔을 때도 살아남아 지금 우리 앞에 서 있습니다.
올가을에는 용문사 은행나무를 직접 찾아가 보시길 바랍니다. 노란 은행잎이 마당 가득 깔린 풍경은 사진으로 보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주말보다는 평일 이른 오전이 한적하고, 아이와 함께라면 은행잎 주머니와 편한 신발을 챙기는 것이 좋습니다. 천 년의 시간을 견딘 나무 아래 서면, 우리가 사는 하루하루가 얼마나 짧고 소중한지 새삼 느끼게 됩니다. 그 느낌이 오래 기억에 남는 가을 여행이 되어 줄 것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용문사 은행나무 단풍 절정 시기가 언제인가요?
A: 평년 기준 10월 말에서 11월 초입니다. 날씨에 따라 변동이 있으니 방문 직전에 단풍 상황을 확인하는 것이 좋아요. 절정기 주말에는 사람이 많이 몰리니까 평일이나 이른 오전을 추천합니다.
Q: 입장료와 주차요금은 얼마인가요?
A: 입장료는 무료입니다. 주차요금은 승용차 기준 3,000원 안팎이고 출차 시 무인정산기로 결제하면 됩니다. 약 700대를 세울 수 있는 넓은 주차장이지만 단풍철 주말에는 오전부터 차가 밀리니 일찍 가는 것이 좋아요.
Q: 아이와 함께 가도 괜찮을까요?
A: 네, 주차장에서 은행나무까지 약 20분 정도 걸어야 하지만 길이 잘 정비되어 있고 아이 걸음으로도 무리 없이 다녀올 수 있어요. 유모차는 경내 돌계단 앞에서 접어야 하고, 은행 열매 냄새가 옮을 수 있으니 주의하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