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 해례본은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한 뒤 1446년에 펴낸 책으로, 문자의 창제 목적과 소리의 원리, 사용법을 담고 있습니다. 국보 제70호로 지정되어 있고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새로 만든 글자가 왜 과학적인지, 어떻게 읽고 써야 하는지를 가장 정확하게 보여주는 자료라서 지금까지도 많은 연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아래 표는 이 책의 핵심 정보를 한눈에 정리한 것입니다.
| 항목 | 내용 |
|---|---|
| 지정 현황 | 국보 제70호,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
| 간행 시기 | 1446년 음력 9월, 목판본 |
| 책의 구성 | 세종의 서문과 예의, 집현전 학자들의 해례 |
| 대표 실물 | 간송미술관의 간송본, 2008년 발견된 상주본 |

목차
한글의 설계도가 남아 있는 책
세계의 많은 문자가 오랜 세월을 거치며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과 달리, 훈민정음은 특정한 원리와 목적을 분명히 정해 창제한 문자입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점은 그 창제 원리를 설명하는 책이 지금까지 고스란히 전해진다는 것입니다. 세종이 직접 쓴 서문과 함께 정인지 등 집현전 학자들의 해설이 실려 있어서, 자음과 모음이 어떤 원리로 만들어졌는지 그리고 소리를 어떻게 합쳐 글자를 이루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유네스코가 이 책을 세계기록유산으로 선정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문자가 만들어진 시기와 만든 사람, 만들어진 원리까지 모두 기록으로 남아 있는 사례는 전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기 어렵습니다. 특히 초성 중성 종성이 어떻게 결합되는지, 글자의 모양이 어떤 원리를 담고 있는지 설명한 부분은 오늘날 한글 연구의 기초가 되고 있습니다.
간송본과 상주본의 차이
1940년 경북 안동에서 발견되어 간송 전형필 선생이 소장하면서 널리 알려진 책이 간송본입니다. 이 책이 바로 지금 국보로 지정된 훈민정음 해례본입니다. 그런데 2008년 경북 상주에서 같은 판본의 책이 새롭게 나타났습니다. 상주본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책은 같은 판에서 찍어낸 책이지만, 남아 있는 장과 기록이 조금 다릅니다.
간송본은 앞부분이 빠진 채 발견되었고, 상주본은 예의 부분과 정인지 서문 일부가 떨어져 나간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상주본에는 간송본에서 볼 수 없는 당시 소장자가 남긴 주석이 있었습니다. 한쪽에 없는 장이 다른쪽에는 남아 있고, 한쪽에 있는 기록이 다른쪽에는 없는 식으로 서로의 빈자리를 채워 주는 관계입니다. 상주본은 발견 이후 소유권을 둘러싼 법적 다툼과 보존 문제까지 겹치면서 일반에 널리 공개되지는 못했습니다.
| 항목 | 간송본 | 상주본 |
|---|---|---|
| 발견 시기 | 1940년 안동 | 2008년 상주 |
| 보존 상태 | 표지와 앞 두 장이 빠져 있었음 | 여러 장이 빠지고 화재로 그을린 흔적이 남음 |
| 자료적 특징 | 국보로 지정되어 간송미술관에 보관 | 소장자가 남긴 주석이 확인됨 |
첫 장에 숨겨진 실수
이 책을 검색하면 가장 많이 보이는 사진이 바로 첫 장입니다. 맨 오른쪽에 훈민정음 네 글자가 크게 보이고 그 옆으로 촘촘한 글자가 이어지는 모습이지요. 한글날 무렵이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그 장면인데, 이 첫 장이 사실 원본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아는 분은 많지 않습니다.
1940년 비어 있었던 두 장
간송본이 세상에 알려졌을 당시에는 원래 표지와 맨 앞 두 장이 떨어져 나가 없었습니다. 하필 그 두 장에는 세종이 새 글자를 왜 만들었는지 밝힌 서문과 글자의 소리를 설명하는 첫머리가 실려 있었습니다. 책의 얼굴 같은 부분이 통째로 비어 있었던 것이지요. 이후 국문학자 김태준 선생과 그의 제자였던 이용준 선생이 그 두 장을 붓으로 새로 써서 채워 넣었습니다. 나머지 장이 목판에 새겨 찍은 것임을 생각하면, 새로 쓴 두 장만 손글씨로 남아 있는 셈입니다.
베껴 쓰는 과정에서 생긴 실수
그런데 새로 써 넣는 과정에서 실수가 하나 생겼습니다. 세종 서문의 맨 마지막 글자가 원래와 다른 음가의 글자로 바뀌어 적힌 것입니다. 원래 문장을 끝맺으며 그뿐이라는 뜻을 담은 글자였는데, 의로 읽히는 다른 글자가 들어간 것이지요. 국가유산청 설명에 따르면 문장을 끊어 읽는 자리에 찍은 동그라미 표시 중 일부도 틀리거나 빠진 곳이 있다고 합니다.
짧게 보면 한 글자 차이일 수 있지만, 이 서문은 모두 54자밖에 되지 않는 공들인 글이었습니다. 글자 수까지 일부러 맞췄다고 보는 학자가 있을 만큼 정성을 기울인 자리였지요. 특히 마지막 글자는 새 글자를 만든 큰일을 해 놓고도 사람들이 편하게 쓰기를 바랄 뿐이라고 담담하게 마무리한 지점입니다. 그 의미를 담은 마지막 한 글자가 잘못 적힌 채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 참 아쉽게 느껴집니다. 처음 이 이야기를 접하면 국보라면 모든 것이 완벽해야 한다는 생각이 조금 흔들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작은 실수 덕분에 이 책이 멀리 있는 유물이 아니라 사람의 손길이 닿은 기록이라는 사실이 더 와닿습니다.
세종실록이 알려준 원래 글자
그렇다면 원래 글자가 무엇이었는지는 어떻게 확인할 수 있었을까요. 그 답은 세종실록에 있습니다. 해례본이 완성된 1446년 9월의 실록 기사에 세종이 지은 같은 서문이 실려 있는데, 여기에는 마지막 글자가 원래 모습 그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시 공식 기록이 오늘날 국보의 틀린 부분을 바로잡아 주는 셈입니다. 누구나 조선왕조실록 홈페이지에서 직접 열어볼 수 있습니다.
첫 장 확인하는 순서
이제 해례본 첫 장 사진을 보면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직접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한자를 몰라도 다음 순서만 따라가면 됩니다.
- 맨 오른쪽 훈민정음 네 글자 다음 줄이 나라의 말소리라는 뜻의 문장으로 시작하는지 확인합니다.
- 그 문장이 보이면 1940년에 붓으로 새로 써 넣은 장입니다.
- 세종의 서문이 끝나는 줄 맨 아래 글자를 살펴보면 됩니다.
한글의 시작을 만나는 시간
훈민정음 해례본은 단순한 옛 책이 아니라 한글이라는 문자의 설계도를 오늘날까지 전해주는 소중한 기록입니다. 첫 장의 작은 실수조차도 우리에게 이야기를 던져줍니다. 국보를 만들고 지켜온 사람들의 정성 덕분에 지금 우리가 편하게 글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 한글날이 되면 해례본 첫 장을 떠올리며 세종대왕의 마음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우리 글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기억하는 일이야말로 가장 따뜻한 한글 사랑이 아닐까 싶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훈민정음과 해례본은 어떻게 다른가요?
A: 훈민정음은 문자의 이름이면서 책의 이름이에요. 해례본은 창제 원리와 사용법을 설명한 책이라서 예의와 해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Q: 간송본과 상주본은 어떤 차이가 있나요?
A: 같은 판본이지만 발견 시기와 보존 상태가 달라요. 간송본은 1940년 안동에서 발견되어 국보로 지정됐고, 상주본은 2008년 상주에서 알려졌어요.
Q: 첫 장의 실수는 왜 생겼나요?
A: 발견 당시 빠져 있던 앞 두 장을 손으로 베껴 채우는 과정에서 생긴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세종실록과 비교하면 원래 글자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